《기대는 그림》은 박광수와 황수연의 드로잉 전시이다. 그림과 그것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을 매체로 삼는 박광수와 모래, 호일, 종이 등을 이용한 입체작업을 하는 황수연은 동료이자 삶의 파트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에 두 작가가 주로 다루었던 재료와는 다른 시도를 통해 제작한 신작 연작으로 그 간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박광수는 종이에 검은 오일스틱을 이용한 드로잉 <덩어리>연작(2020)을, 황수연은 종이 콜라주와 연필 드로잉 <녹는점>연작(2020)을 선보인다. 전시장 내에 공존하는 두 작가의 작품이 서로에게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관객에게 어떤 말을 걸어 올지 상상하는 것이 이번 전시를 기획하는데 매우 중요한 동력이었다. 박광수와 황수연을 활동 초기부터 지켜보았던 기획자로서 두 작가가 긴 시간 주고 받았을 영향을 짐작하면서 대화를 나눠왔고 그렇게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시로 이루어졌다.
두 작가와의 대화에서 침묵의 시간은 매우 소중했다. 어쩌면 공백, 혹은 대화의 단절처럼 보이는 침묵은 사실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이었고 대화의 연장이기도 했다. 연결되지만 끊어지기도 했던 그 시간은 그들의 작품 안에서 때로는 불쑥 등장하기도 했다. 마치 침묵의 시간을 채우는 것 같은 검은 덩어리들은 박광수 드로잉 안의 검은 영역이나 황수연의 연필 농담이 짙어지는 어느 지점에서 목격되었다. 한 공간에 있을 두 작가의 작품을 상상하면서 어느새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 작품과의 거리를 조절하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지금 이 전시는 그들과 내가 앞으로 나눌 긴 대화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기획자, 작가가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또 서로에 기대서 작품과 작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기대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한 장면을 이 전시에서 볼 수 있길 희망한다.
전시안내
전시제목: 기대는 그림
전시기간: 2020년 9월11일 - 10월10일
참여작가: 박광수, 황수연
전시장소: 누크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평창 34길 8-3 (03004) )
관람시간: 화~토: 11:00am~6:00pm 공휴일: 1:00pm~6:00pm * 일, 월: 휴관
추석연휴 기간 중 9월 30일, 10월 1일 휴관
전시문의: 02-732-7241, nookgallery1@gmail.com
전시취지
맹지영
검은 색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
그리고,
검은 덩어리는 여기 저기서 목격된다.
박광수는 검은 색의 풍경을 그린다. 색이 부재한 그의 풍경은 때로는 종이 위에 펜으로 혹은 캔버스에 수제로 만든 스폰지를 마치 붓처럼 만들어 아크릴로 그린다. 화면에서 인물과 풍경이 사라지고 드러남을 무수한 선과 농담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소멸과 생성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한다. 그의 그림에서는 시작과 끝의 순서는 임의적이다. 시간은 그림 안에서 실재와는 다르게 흘러가며 관객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오고 간다.
이번 전시에서 박광수는 기존의 재료에서 벗어나 종이에 검은색 오일 스틱을 이용한 드로잉 신작 덩어리 연작을 선보인다 . 오일 스틱은 기존에 그가 사용해왔던 펜이나 수제 스폰지와는 달리 재료의 성질이 무르고 , 그로 인해 그리는 동안 손의 온도에 의해 점차 뭉그러지게 된다. 작가가 마치 ‘진흙을 만지는 것’ 같다고 얘기한 것 처럼, 선을 그리다 재료가 닳고 뭉개지면 미끌거리는 손으로 종이 위에 바르거나 문지르면서 면을 만들거나 농담 변화를 주기 도 한다. 이번 연작의 제목 ‘덩어리’는 그가 재료 오일스틱 를 다루면서 느꼈던 촉각적 물성의 경험이 반영된 동시에 드로잉에서 보여지는 검은 영역 혹은 공간의 질량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일 스틱으로 그린 이번 그림에도 그의 전작들처럼 풍경은 여전히 있고 , 그 풍경 안에 등장하는 인물과 인물처럼 보이는 풍경이 있다 . 다만 이번에는 그림 안에서 오랜 시간을 서성이며 이미지를 만들었던 과거와는 달리 생각의 속도를 손에 넘겨주었다. 손이 이끄는 대로 이미지가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이번 작품들은 기존과 달리 인물이 풍경을 주도하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제 인물은 점차 풍경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황수연은 모래 , 호일 , 종이 등의 재료 고유의 특성을 조율하면서 입체 형상을 만든다. 흩어지는 성격의 모래를 본드로 단단하게 만들거나 호일을 뭉치고 두드려 돌처럼 단단한 덩어리로 바꾸어 놓는다. 혹은 재단자로 잘라진 종이가 이리저리 겹쳐지면서 어떤 생명체를 연상케 하는 두상과 몸통을 만든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여러 개체가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형상이 되기도 한다.
덩어리는 특히 황수연에게는 세상을 인식하는 데 있어 재료가 되는 기본 단위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녹는점 연작은 모두 납작하다. 단단하거나 풍성했던 기존의 형상들은 종이 위에 연필 드로잉과 종이 콜라주로 모습을 드러냈다. 녹는점 연작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여러겹 중첩되거나 정지된 상태이다. 언듯 부피감이 사라진 듯 보이는 그의 드로잉은, 원래는 입체지만 녹아내려 평면에 안착한 형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연필 드로잉을 하면서 ‘동그랗게 녹 아드는 것’을 생각했고 , 여러 겹의 종이를 중첩시킨 종이 콜라주는 ‘납작하게 담아두는’ 상태를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부재로 인해 채워지고 또 다시 사라지는 순환의 과정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녹는점’이라는 적확한 이름을 남겼다.
맹지영은 서울과 미국에서 미술관련 공부를 한 후 2009년부터 2020년 4월까지 비영리기관인 두산아트센터의 두산갤러리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예술과 삶의 접점에 대해 고민하며 전시와 글을 통해 대중이 느끼는 예술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찾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는 『스몰토크: 뉴욕에서의 대화』(2015)가 있다.
작가약력
박광수 Gwangsoo Park (b. 1984)
박광수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조형예술과를 석사 졸업했다. 2019년 학고재 갤러리(2019), 두산갤러리 뉴욕(2018), 두산갤러리 서울(2017), 금호미술관(2016), 신한갤러리 광화문(2015), 갤러리 쿤스트독(2014), 인사미술공간(2012), 갤러리 비원(2011)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금호미술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합정지구, 하이트컬렉션, 두산갤러리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우민아트센터 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광수는 2016년 두산연강예술상과 종근당예술지상을 수상했다.
황수연 Sue Yon Hwang (b. 1981)
황수연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조형예술학과를 석사 졸업했다. 작가는 두산갤러리 뉴욕(2019), 두산갤러리 서울(2019), 가변크기(2017), 금호미술관(2017), 갤러리 AG (2013)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서울시립미술관 벙커, 온수공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아트스페이스3, 금호미술관, 브레가 아티스트 스페이스, 챕터 투, 두산갤러리 서울 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황수연은 2018년 두산레지던시 뉴욕 입주작가 공모에 선정되었다
작품이미지
박광수, 덩어리 Mass, oil on paper, 131x104cm, 2020
박광수, 덩어리 Mass -손에 든 것, oil on paper, 100x70cm, 2020
박광수, 덩어리 Mass -가라앉은 것, oil on paper, 135.5x107cm, 2020
박광수, 덩어리 Mass, oil on paper, 100x70cm, 2020
박광수, 덩어리 Mass, oil on paper, 100x70cm, 2020
박광수, 덩어리 Mass, oil on paper, 100x70cm, 2020
황수연, No Eyes, 42x29.7cm, 종이에 연필, 2020
황수연, No Eyes, 20x29.7cm, 종이에 연필, 2020
황수연, No Eyes, 42x29.7cm, 종이에 연필, 2020
황수연, No Eyes, 29.7x20cm, 종이에 연필, 2020
황수연, 녹는점, 29.6x19cm, 흑연, 종이, 스테플러, 2020
황수연, 녹는점, 67x64cm, 흑연, 종이, 스테플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