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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유정 개인전 《흰 돌 밑》

작성자 사진: 누크갤러리
누크갤러리
6분 전
4분 분량

누크갤러리는 10월 29일부터 11월 21일까지 엄유정 개인전 《흰 돌 밑》을 개최한다.

엄유정은 오랜 시간 해안가를 오가며 파도와 숲, 나무, 돌과 인물을 그린다. 작가는 대상의 형태 자체보다 그 안에 깃든 움직임과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리기는 대상에 따라 그리는 방식과 몸의 감각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며, 반복해서 그리고 다시 그리는 행위 속에서 그림은 매번 새로운 형태와 리듬을 만들어낸다.

《흰 돌 밑》은 서로 다른 대상과 시간에서 비롯된 그림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형성하는 관계를 살펴본다. 대상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는 세계를 새롭게 연결하는 계기가 되며, 그림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고정되지 않은 형태와 움직임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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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안내*

전시 제목: 흰 돌 밑 Beneath the White Stone

전시 기간 : 2026년 10월 29일 ~ 11월 21일

참여 작가: 엄유정 Eom Yu Jeong

전시 장소: 누크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평창34길 8-3

관람 시간: 화-토: 11:00-18:00 공휴일: 13:00-18:00 *일, 월 휴관

전시 문의: 02-732-7241 nookgallery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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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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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돌, 밑」

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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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돌밑이라는 아리송한 단어를 보며, 엄유정의 그림을 살핀다. 흰, 돌, 밑이라 쉼표를 찍고 나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낱말들. 그 사이를 유영하며 새롭게 탄생하는 의미들. 엄유정의 여덟 번째 개인전은 《흰돌밑》이라는 제목과 함께 파도, 숲, 나무, 돌과 인물 그림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지 않는다. 공통된 소재나 서사를 찾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어긋난다.

 

흰돌밑은 오랜 시간 바닷새가 머문 흔적이 쌓이며 표면이 하얘진 돌들이 모여 있는, 이제는 고유명사가 된 어느 해안의 지명이다. 그러니까, 흰돌밑은 돌 위에 쌓인 시간이 만든 풍경의 이름이다. 흰돌밑에 서서 하얀 바위와 파도를 바라보던 엄유정의 시선도 아마 이와 같이 하나의 풍경 안에서 변해가는 모양을 향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먼저 일러두고 싶은 것은 엄유정의 관심이 대상 자체보다 그것을 그리는 행위, 그 과정에서 대상이 회화의 문제로 바뀌는 순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2014년 첫 개인전 이래 12년 동안 그는 눈, 돌, 산, 식물, 빵, 인물 등 다양한 대상을 조형적 재료로 삼아 왔다. 언뜻 무관해 보이지만 각각의 형상은 서로 다른 시기의 화면과 느슨한 계보를 이룬다. 이를테면 〈19개의 글렌 굴드〉(2014) 연작이 영상 속 피아노 연주를 하는 글렌 굴드의 몸을 붙들던 방식은 매번 다르게 밀려오는 파도의 부피를 작은 화면의 연속으로 옮기는 〈부피 / 파도〉(2026)와 닮았고, 〈Death Valley〉(2015)를 통해 오랜 시간 바람에 깎인 사막의 지형을 덩어리로 읽어 내던 시선은 〈눈 형태〉와 〈바위 형태〉(2022-2023) 연작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서로 다른 속도로 변화를 예비한다. 대단히 빠르기도, 몹시 느리기도 한 변화를 감각하는 눈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모양을 붙잡는 것이다.

 

엄유정의 그림은 기본적으로 실제 본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현실의 대상을 오래 보되, 그것이 지닌 서사나 상징과 같은 정보값보다는 형태와 움직임, 밀도 같은 조형적인 요소를 추려낸다. 그에게 현실은 그림이 시작되는 조건이다. 현실에서 모양을 보고, 모양이 지닌 고유한 힘을 선과 색, 면과 부피의 관계로 옮기기. 풍경으로 보이던 것이 선이 되고, 사물로 수렴하는가 싶으면 다시 색이 되는 일. 손이 파도가 되고, 눈이 바위가 되는 일. 이 넘나듦은 엄유정의 세계를 관통한다.

 

❆❆

 

이번 전시의 출품작을 살피기 위해 2025년으로 돌아가 보자. 작가는 바닷가 마을에 머물며 근처를 거닐고 파도를 관찰한다. 파도를 생각하며 그가 남긴 노트 속에는 부피를 표면에 담는 일, 변화가 쌓이는 그림에 대한 사유와 고민이 엿보인다. 몇 해 전부터 파도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심은 이제 그림이 된다. 그러나 손을 움직이는 순간 형체는 이미 사라지고, 종이에는 그것이 잠시 있었다는 흔적만 남는다. 〈부피 / 파도〉연작은 그 잔상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건 느슨하게 올라탄 선과 부드럽게 흘러내린 색들이다. 파도를 그리려던 시도는 아마 형태가 아닌 반복성, 그럼에도 매번 ‘새롭고 하얀 큰 덩어리’를 향했을 것이다. 작고 연속적인 화면들이 나란히 소거해 나갔을 세부를 떠올리며 파도와 그리기의 닮은 점, 반복이 만드는 리듬을 생각한다. 그것은 오롯이 눈에 의지해 대상을 인식하는 일과 다른 차원임을 이내 깨닫는다.

 

〈숲 / 형태〉(2026)는 반대 방향의 감각을 일깨운다. 높이 2.45m에 이르는 큰 화면을 가르는 나무 기둥과 줄기들, 견고한 선을 따라 이어지는 회보라와 청회색 면들, 언젠가 여러 겹의 잎사귀였을 초록 색면 조각들이 숲의 밀도를 만든다. 아니, 정확히는 화면의 두께와 견고함을 함께 만든다. 엄유정은 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같은 부분을 그리고 밀어내는 일을 반복했다. 반복의 이유에 대해 작가는 거듭 그리며 관찰하는 동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면과 덩어리가 새롭게 보였음을 이야기한다. 나무를 보는 눈이 계속해서 바뀌었음을, 그것을 다루는 손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대상을 오래 보는 동안 변화하는 눈과 손을 회화 안에서 허용하는 일, 회화적 시간을 수용하는 작가의 태도가 담긴 그림이라 하겠다.

대상과 마주할 때마다 그리는 법을 새로 찾는다는 작가의 말은 파도와 숲 그림이 전개되는 방향이 달랐다는 점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파도는 연작으로, 숲은 한 점으로 완성되었고, 그 시간은 각각 연작의 길이와 한 화면의 두께로 남았다.

 

파도도 수풀도 실제로는 경계를 고정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물은 흘러가고, 잎사귀와 가지는 흔들리며 서로를 가린다. 엄유정의 화면에서 이들은 부피와 형태를 얻는다. 이때의 부피와 형태란 화면 안에서 차지하고 버티는 힘을 포괄한다. 그 힘은 사라지는 것을 붙든 자리에서 생긴다. 〈부피 / 파도〉는 최소한의 조형으로 속도와 부피를 함께 남기려 했고, 〈숲 / 형태〉는 시간과 형태를 레이어로 쌓았다. 그리고 두 화면의 표면에 남은 것은 선과 면, 색과 물감 같은 오롯한 회화의 요소, ‘그림들’이다.

 

파도와 숲 사이엔 돌, 나무 등 또 다른 그림들이 존재한다. 이 역시 형상을 경유해 색과 선의 문제가 되는 과정에 놓인다. 한편 뜨문뜨문 등장하는 인물은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기에 얼굴로 읽히지만, 특정한 ‘누구’로 수렴하지 않는다. 파도가 선과 색 사이에, 숲이 풍경과 화면의 두께 사이에 머무른다면, 인물은 레이어 사이에 머문다. 선과 면이 뒤섞이고 배경과 윤곽이 겹쳐진 그림이 어떤 형태와 부피, 다시 말해 힘을 가질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

 

느슨함과 견고함 사이를 오가는 엄유정의 그림에는 언제나 산뜻함이 있다. 여기서 산뜻함은 단순히 기분이나 느낌이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특정 색이나 구도와 같은 개별 요소로 환원되지 않은 채 한 화면에서 다른 화면으로 건너가며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감각에 가깝다. 느슨하게 움직이는 선과 화면을 단단히 점유하는 형상, 가벼운 인상과 쌓인 물감의 시간이 한데 있을 때 그의 그림은 산뜻해진다. 단단히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꽉 닫히지 않고, 오래 쌓였으면서도 무겁게 가라앉지 않는 상태가 조응하며 뜻밖의 리듬과 연결을 만든다. 산뜻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작가약력

 


엄유정 Eom Yu Jeong (b. 1985)


엄유정 작가는 회화 매체를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는 주변 환경에서 얻은 시각적 경험을 회화와 드로잉의 형태로 풀어낸다. 2024년 《Moray Volumes 모레이의 부피들》(대전시립미술관), 2021년 《밤 긋기》(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 갤러리, 서울), 《FEUILLES》(소쇼, 서울) 등 총 8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단체전으로는 2026년 《글짓 쓰는 예술》(북서울미술관, 서울), 2023년 《Line 연결 - 원형정원 프로젝트》(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2년 《어떤 삶, 어떤 순간》(금호미술관, 서울), 《소란한 여름, 햇살에 기대어 서서》(우민아트센터, 청주), 2018년 《IN_D_EX 인덱스》(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등에 참여했다. 2022년 스코틀랜드 글렌피딕 아티스트 레지던시, 2020년 경기창작센터, 2019년 청주창작스튜디오, 2013년 아이슬란드 리스투스 아티스트 레지던시 등에 참여했다. 2021년 전시와 함께 제작한 화집《FEUILLES》는 독일 북아트재단(Stiftung Buchkunst)과 라이프치히 도서전(Leipzig Book Fair)이 공동 주최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Best Book Design from all over the World)’에서 골든 레터(Golden Letter)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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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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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 형태 Stone / Shape 2026 종이에 과슈, 아크릴릭 36x48cm





숲 / 형태 Forest / Shape 2026 캔버스에 과슈, 아크릴릭 190x245cm





얼굴 Face 2026 캔버스에 과슈, 아크릴릭 30x40cm





흰 돌 / 형태 White Stone / Shape 2026 캔버스에 과슈, 아크릴릭 60.5x80.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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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 / 파도 Volume / Wave 2026 캔버스에 과슈, 아크릴릭 41x27cm





부피 / 파도 Volume / Wave 2026 캔버스에 과슈, 아크릴릭 41x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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