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안내
전시 제목: Studios 작업의 준비
전시기간: 2025년 2월 6일 – 2월 28일
참여작가: 정주영, 곽희지, 박원근, 심경아, 윤영빈, 이다영, 최지아
전시 장소: 누크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평창 34 길 8-3 (03004)
관람시간: 화~토: 11:00am~6:00pm 공휴일: 1:00pm~6:00pm *일, 월: 휴관
전시 문의: 02-732-7241 nookgallery1@gmail.com
전시 서문
Studios : 작업의 준비
이미 시작되어 버린 삶을 어떻게 준비하며, 어디로 향할 수 있을까? 작업과 삶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이번 전시의 제목에 대해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업의 준비’라는 이 보이지 않는 사건은 스튜디오에서 시작된다. 스튜디오는 일차적으로 개인의 사적인 작업실이자,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기반으로 창작의 과정을 배우는 학교 수업의 명칭이다. 스튜디오의 두 의미를 매개하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작업이 바깥으로 향하는 과정을 함의하는 동시에,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와 세미나를 엮은 『소설의 준비』에서 빌려 온 것이기도 하다. ‘소설의 준비’는 바르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구상으로만 남은 소설 <새로운 삶>의 뼈대를 이루는 내용이다. 그 가운데 ‘미로의 은유’라는 세미나에서 그는 ‘미로’에 대해 논한다. 미로는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시작과 끝이 모호하게 뒤섞인 길이다. 나아가 미로는 의도적으로 설계된 인공적인 공간이자, 빠져나올 수 없음을 알면서도 출구를 갈망하는 신경증적 장소, 혹은 사랑하는 존재에 닿을 수 없이 중심이 부재한 여정이라 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선택을 반복하며 길을 찾아야 하는 삶의 내밀한 구조와 닮아있다.
습작과 완성, 수행과 실패를 왕복하며 몰입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스튜디오는 삶과 맞닿아있는 작업의 과정을 탐구하는 장소다. 한편, 오랜 시간 삶에 밀착해 온 회화의 동시대 속 역할과 가치를 고찰하기 위해 우리는 함께 역사를 되짚는다. 회화의 재료와 기법에 대한 오래된 기술서부터 대중문화의 출현으로 인해 변화한 미술의 흐름과 비평적 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참조를 살피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하는 것에 몰두한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고민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작업 간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선을 다듬어나가는 훈련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자 시도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각자의 미로를 거친다. 복잡스러운 형태로 엉킨 여러 미로는 막연히 비슷하게 보이지만, 미로 가운데에 선 이들의 각기 다른 태도와 시선이 미로의 형태를 결정할 수 있다. 곽희지(b.1997)는 얇은 조각을 만들고 캐스팅하여 회화의 재료로 사용한다. 원형이 변화하고, 퇴화하고, 다시 배열되고 봉합되는 화면을 통해 사라진 대상을 매개하는 이미지의 제작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박원근(b.2000)은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와 존재를 향한 정서적 거리감을 조율하면서, 그간 소설의 문장과 정원을 해석하고 의미를 되묻는 여정을 회화로 남겼다. 심경아(b.2000)는 일상의 편린 속에서 촉발되는 짧고도 강렬한 감정의 순간을 회화로 그린다. 그중에서도 밤이라는 시간의 유한한 정서에 관심을 둔다. 윤영빈(b.1991)은 주변을 이루는 사물과 이미지들의 문법을 참조하고 흉내 낸다. 복수의 이미지가 엮이며 발생하는 충돌을 통해 동시대의 시각 환경을 재고하고, 회화의 또 다른 모습을 상상하기 위한 시도를 지속한다. 이다영(b.1997)은 사운드, 디지털 이미지, AI 기술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역의 불가능성과 오역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최지아(b.2000)는 자아와 이를 구성하는 트라우마에 관심을 둔다. 나아가 현실과 현실의 대안으로 발생하는 판타지(Fantasy)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구상 회화의 대안적 성격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들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자신만의 미로를 응시해 왔을 정주영(b.1969)은 풍경에 관한 인식론적 이해, 감각과 재현 사이에서 회화적 모델로서의 풍경을 고찰한다.
미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는 것은 다난한 일이다. 일순 잃어버리고 마는 방향감각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미로 속에서 서로를 마주한 찰나의 시간에 깃대를 꽂아 길잡이 삼을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이자 동료의 존재로 하여금 자신이 선 지점, 지나온 경로, 모퉁이 너머로 다가올 새로운 순간과 시야를 견주어본다. 존재할지 모를 출구의 정체를 유추해내기보다, 스튜디오에서 나누었던 대화와 함께 읽었던 책, 테이블에 둘러앉아 나눠 먹은 초콜릿, 같은 공간에서 바라보았던 창문 밖의 풍경들에 태도와 걸음을 맡긴다.
작품이미지
정주영 Zuyoung Chung (b.1969)
정주영은 풍경에 관한 인식론적 이해, 감각과 재현 사이에서 회화적 모델로서의 풍경을 고찰한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그림들은 <그림의 기후> 연작의 일부로, 풍경의 배경 요소이자 산과 그 너머의 공간을 매개하는 구름, 대기 등을 통해 감각과 재현, 풍경에 관한 인식론적 이해를 살핀다.
곽희지 Heeji Kwak (b.1997)
곽희지는 얇은 조각을 만들고 캐스팅하여 회화의 재료로 사용한다. 원형이 변화하고, 퇴화하고, 다시 배열되고 봉합되는 화면을 통해 사라진 대상을 매개하는 이미지의 제작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가질 수 없는 기술들에 대한 환상적인 소식은 주로 실험에 성공한 쥐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1> 연작은 보조생식술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출발하여, 암수 쥐의 등을 연결했다는 괴담 같은 실험의 보도 이미지를 출처로 한다. 쥐들은 기술과 환상을 매개하고 사라진 존재들이자 결과에서 보이지 않고, 성공한 건지 실패한 건지 모를 아이러니를 가리키는 대상이다. 둘이서 하나이며 자웅동체인 상상 속 쥐들을 동화적인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은, 과정적인 것을 전면에 두고 노는 일, 그리고 나의 환상을 충격이 덜하도록 아름답게 수정하는 것이다.
박원근 Wongeun Park (b.2000)
박원근은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와 존재를 향한 정서적 거리감을 조율하면서, 그간 소설의 문장과 정원을 해석하고 의미를 되묻는 여정을 회화로 남겼다.

박원근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서 친밀함을 느끼고 가까운 것을 낯설게 바라볼 때가 있다. 빛깔과 명암을 변형한 기억의 타래는 주체의 외부와 내부의 혼란을 가리키는 알레고리이다. 회화를 경유하여 자신과 남의 눈에 맺힌 것, 잊고 잃어버렸기에 미처 닿을 수 없는 것, 빛과 색을 머금어 세상을 반사하는 것을 겹친다.
심경아 Kyung A Sim (b.2000)
심경아는 일상의 편린 속에서 촉발되는 짧고도 강렬한 감정의 순간을 회화로 그린다. 그중에서도 밤이라는 시간의 유한한 정서에 관심을 둔다.

밤의 모임 중 포착한 단편적인 제스처의 장면들을 회화의 표면 위에서 겹쳐내며, 기억의 몸을 구성해 보기를 시도한다. 한때 셔터의 움직임으로 포착되었던 화면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형상들로 나타나며 지나간 순간 이후의 공백을 호출한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주위를 맴도는 기억의 이미지들이 남긴 흔적을 되돌아보며, 낮의 현실과 유리된 밤의 비현실적 감각 사이의 교차점을 찾고자 한다.
윤영빈 Yeongbin Yoon (b.1991)
윤영빈은 주변을 이루는 사물과 이미지들의 문법을 참조하고 흉내 낸다. 복수의 이미지가 엮이며 발생하는 충돌을 통해 동시대의 시각 환경을 재고하고, 회화의 또 다른 모습을 상상하기 위한 시도를 지속한다.

색깔 연작은 가족이 수확한 열매, 주변 상권, 온라인 상점을 통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유기물에서 색소 입자를 추출하며 시작된다. 원료의 품종이나 배합 비율, 혼합 온도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으며 고르지 않은 색채를 띠는 수제 물감은 기업에 의해 제조되는 물감에 비해 채도와 안정성이 부족할 수 있으나, 모방의 대상이 되었던 생물의 빛을 직접 운반한다. 물감의 주된 생산 구조에서 이탈한 색채를 통해 규격화되고 상품화된 비물질적 가치에 대해 질문한다.
이다영 Dayoung Lee (b.1997)
이다영은 사운드, 디지털 이미지, AI 기술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역의 불가능성과 오역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정서와 뉘앙스는 매체 간 번역이 가능할까? 기술(AI)의 피상적인 일면을 체감하며 일종의 번역 기계를 만들어본다. 오브제와 사운드로 완결되는 이 작업물은 부조리한 번역을 시도하는 번역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도출되었다. ‘슬픈 발라드곡’이라는 원본이 간직하던 과잉된 정서는 사라진다거나 누락되었다기보다, 옆으로 이동한 것처럼 느껴진다. 원본의 정서가 ‘번역’을 거치게 되면, 그 때 ‘진짜’ 알맹이가 어느 쪽인지 구분 가능한 것인지, 새로운 의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AI가 만들어내는 껍데기같은 이미지와 음악적인 요소에 대해서 무엇이 진짜 ‘고통’이고 ‘절절함’인지 고민해본다.
최지아 Zia Choi (b.2000)
최지아는 자아와 이를 구성하는 트라우마에 관심을 둔다. 나아가 현실과 현실의 대안으로 발생하는 판타지(Fantasy)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구상 회화의 대안적 성격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Our Home> 연작은 평면 회화 위에서 ‘가상의 집’을 구성하려는 시도이다. 미성숙한 자아는 어떤 시간 속 ‘집’의 장면에 머무르면서, 현재의 우리를 계속해서 호출하고 있다는 상상이 작업의 시작점이 된다. 집을 정신적 출발지로서의 공간으로 개념화하고, 단절된 장소 속에서 자아가 구축되고 무너지며 다시금 재생되는 일련의 과정을 회화의 레이어로 은유하고자 한다. 연작 속 두 인물들은 같은 외양을 한 동일인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거울, 다락, 창문과 같은 상징과 함께 자아의 시각적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낸다.